서울 中區 西小門洞 중앙일보 빌딩. 三星그룹의 李秉喆 선대 회장이 벽면과 바닥의 대리석 색깔까지 지정할 만큼 심혈을 기울여 지은 26층의 「예술적」 건물이다. 「예술적」이라고 한 것은 흔히 보는 箱子型(상자형) 건물이 아니고 建坪(건평) 감소의 非경제성을 自請(자청)한 조형적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고급 건물의 7개 층을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가 사용하고 있다.
디자인경영센터는 그룹 회장실이 위치한 三星 본관 건물과도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三星그룹 내부에서 디자인 부문의 現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三星전자의 디자인 부문은 三星종합연구소 산하 디자인실로서 1981년에 출범했다. 水原에 있던 디자인 부문이 서울로 옮겨온 것은 「新경영 선언」 1년 후인 1994년의 일이었다. 디자이너라면 田園的(전원적) 환경보다 유행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서울에서 생활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5년에는 三星전자 디자인연구소로 확대 개편되었다.
李健熙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면서 『感性의 벽까지 넘어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어 2000년에는 「디자인 優先경영」을 선언했다. 이에 발맞춰 디자인연구소를 더욱 확대시킨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가 설립되었다.
三星전자의 디자이너들은 해외 근무자를 제외한 500여 명이 이곳에 집결해 있다. 일본의 家電 메이커 중 가장 디자이너가 많다는 마쓰시타電氣産業(2004년 4월 현재 410명)보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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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전자의 디자인 및 브랜드 경영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세계적 경제지들. 왼쪽 「비즈니스위크」(2004년 11월29일자)의 표지엔 三星전자의 캠코더, 오른쪽 「포브스」(2004년 7월26일자)의 표지엔 三星전자 윤종용 부회장의 얼굴사진이 들어가 있다. |
「儒敎的 색깔」을 파괴하는 영 파워의 도전
젊은 디자이너들은 三星그룹 창업 이래의 「유교적 색깔」을 지우고 있다. 2층 로비의 커피숍에서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인전략팀의 조수현씨를 만났다.
―「三星그룹은 유교적인 질서가 유지되는 회의 같은 것을 좋아하는 조직」 아닙니까. 「단정함」, 「깔끔함」은 三星맨의 드레이드 마크이기도 하구요.
『디자인경영센터는 달라요. 우리는 3, 4명씩 팀을 이뤄 연령과 직위가 어떠하든 평등한 입장에서 일합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매니저를 찾아가 직접 토론해요. 아이디어가 인정되면 즉각 계획단계로 들어갑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 상사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디자인경영센터의 분위기예요』
젊은 스태프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필자가 이제껏 만나온 三星맨들과는 달리 코밑수염을 기른 얼굴에 블루진 차림도 드물지 않다. 그들의 머리칼 색깔을 보면 초록이나 핑크색이다. 「아저씨 스타일」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창의성이 중시되는 디자이너의 세계는 원래 그런지 모르겠다. 三星그룹의 「宗家」인 제일모직의 패션 디자인실에도 「전통적인 三星」은 없었다. 컴퓨터로 드로잉을 하면서 빨간색·검은색 캡을 쓰고 일하는 스태프들도 눈에 띄었다. 높은 작업대 앞에서 선 채로 일하는 한 여성 디자이너는 히프의 아슬아슬한 線까지 드러나는 「超(초)골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들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은 젊게 변해 가는 三星그룹의 쇼윈도이다.
『디자인을 배경으로 한 브랜드의 開花…. 최근 몇 년간의 三星전자를 간결하게 표현하면 이러한 형용이 될 것이다』
일본의 「니케이(日經) 디자인」誌 2004년 10월호는 三星전자의 대두를 위와 같이 썼다. 이어 『미국·유럽·중국·러시아 등 거대시장 또는 신흥시장에서 디지털 家電을 보면 三星전자의 꽃(디자인)은 소니나 마쓰시타電氣産業과 같은 日本勢에 명확한 위협으로 비치고 있다』고 경계했다.
李健熙의 「123字 메시지」
그렇다면 三星전자의 디자인은 어떤 전략에 의해 급변해 왔으며, 그 진원지는 어디일까.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사무실의 벽면에는 李健熙 회장의 「123字 메시지」가 붙어 있다. 그 내용은 李회장의 1996년 신년사 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다가올 21세기는 文化의 時代이자 知的資産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哲學과 文化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創意力이 기업의 소중한 資産이자 21세기 기업경영의 최후 勝負處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디자인이 21세기 기업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될 것」이라면 三星은 어떻게 대처해 왔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 鄭國鉉(정국현) 전무를 만났다. 디자이너들의 「맏형」인 그는 三星전자의 디자인 경영을 실무적으로 추진해 온 「키 맨(Key Man)」으로 알려져 있다.
―저기 저 벽면에 붙어 있는 「123字 메시지」를 읽어 보니 디자인 개혁에 관한 李健熙 회장의 의지를 새삼 느낄 수 있군요.
『2002년 承志園(승지원: 三星그룹의 영빈관)에서 제가 후쿠다 교수(1989~ 1999년 三星전자 고문 역임)와 함께 회장님을 만났을 때 「123字 메시지를 (디자인경영센터의) 방마다 붙여 놓고 회장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회장께서 경상도 억양으로 「1980년대 말에도 내가 그런 말을 했는데, 왜 그땐 못 알아들었노」라고 하더군요. 회장께서 디자인에 관해 언급해도 그 당시엔 (지휘계통상의) 여러 단계를 거친 때문인지 그 뜻이 디자인 쪽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어요. 1996년 정초의 「123字 메시지」는 우리 디자이너가 자신감과 프라이드를 갖고 일할 수 있게 했습니다. 회장께서 저희들에게 보이지 않는 「완장」을 채워 준 것입니다』
―三星이 디자인에 관해 눈을 뜬 것은 李健熙 회장이 「新경영」을 선언한 1993년 이후로 생각됩니다. 당시 鄭전무께선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1993년 李健熙 회장이 주재한 LA 회의 때 저는 부장이었습니다만, 디자인 쪽에서는 제일 고참이라 그런지 불려갔거든요(당시 참석 범위는 임원급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회장님을 가까이서 뵙게 되었습니다. 三星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보라고 부르신 거죠』
―당시 미국의 시장에서 三星전자 제품은 어떤 취급을 받았습니까.
『매장의 구석자리에 놓여 있었죠』
―비교전시도 했다면서요.
『우리 제품들과 경쟁사 제품들을 구입, 100여 평짜리 방에다 갖다 놓고는 비교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전시장의 공간이 좁아 上下로 진열한 것들도 있었어요. 회장께서 「上下로 놓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옆으로 내려 놓고 비교했습니다』
―그때 李회장이 뭐라고 합디까.
『예컨대 샤프의 팩시밀리와 三星의 팩시밀리를 나란히 놓고 디자인의 수준, 인쇄상태, 컬러문제, 금형문제, 사출문제 등등을 말씀하시는데,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렇게 重視하는 분이 있구나 하며 감동을 받았어요. 워낙 말씀이 빨라 다 받아쓸 수 없었지만, 이러면 三星의 디자인도 비전이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LA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李회장의 디자인觀을 처음 접하게 되셨군요.
『회의를 끝낸 후 회장께서 여러 임원들에게 일본에 들러서 소프트 제품과 관련된 서적을 사 보라고 하셔서 전철을 타고 1시간쯤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회장님과 중·고교 동기동창인 이해민 부사장님과 동행했는데, 「소년 시절 회장님은 어떠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李부사장에 따르면 그 시절에 학교를 파한 뒤 함께 회장 댁에 가서 놀다가 보면 어느 틈에 회장님이 사라진대요. 「돌아갈 시간이 되어 찾아보면 마당 한구석에서 혼자서 분해한 자전거를 닦고 조립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물건을 뜯어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는 겁니다』
名品과의「눈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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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에 이사해 온 李健熙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 李회장의 자택에는 경쟁 메이커의 신제품을 전시해 놓고 있는 방이 있다. 이곳에서 李회장은 명품들을 분해하여 장·단점을 파악하는 在宅근무를 한다. |
―후계자 수업 당시에도 李회장이 그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부회장 시절의 그를 비서실에서 보좌한 孫炳斗(손병두·후일 全經聯 상근부회장 역임)씨에 의하면 부회장실의 책상 서랍 안에는 분해 중이거나 조립 중인 名品 시계 등이 수두룩했다고 합디다.
『경쟁사의 신제품이 처음 나오면 반드시 회장 댁에 하나 사서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회장 댁에는 그런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방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처음 한동안 그 물건과 눈으로만 싸운답니다. 그런 「눈싸움」으로 물건이 이해되면 이제는 분해해서 더 깊이 들어가고…. 그런 다음에야 (그 제품과 경쟁관계인) 우리 쪽의 사업 책임자를 불러 이것저것을 묻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고 해요』
―물건에 대한 李회장의 눈높이가 범상하지 않은 것 같군요.
『지난 4월 밀라노 회의에서도 회장께서는 「애니콜 빼고 三星의 모든 제품이 1.5류 수준에 불과하다. 이젠 디자인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李회장은 물건과 도구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가진 분입니다. 예컨대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경험이나 가치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경우에도 고객에게 이미 익숙해진 버튼들의 배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블록의 앞단이나 뒷단에 새 버튼을 배치하라는 겁니다. 그걸 중간에 섞으면 우리 제품에 익숙한 고객들이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죠』
―각각의 물건들이 갖춰야 할 기준이나 룰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군요.
『디자이너로서 제가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세간에서 「李健熙 폰」 또는 「회장 폰」이라고 불리는 T-100이라는 휴대전화기가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그 이전까지 핸드폰이라면 작고 가벼운 쪽으로만 변화시키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때 李회장은 「너무 작아 잡기도 어렵고 조작하기도 어려우면 안 된다. 조금 넓고 얇게 만들어 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어요.
이것이야말로 마케팅 현장의 게임룰을 크게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T-100은 그 형상이 오랫동안 주물러서 매끄러운 조약돌처럼 생겼잖아요. 종전엔 핸드폰이 네모꼴이었는데, T-100은 모서리 없이 납작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변화한 겁니다. T-100은 1000만 대 이상 팔린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에 관한 李회장의 잦은 언급이 三星의 디자이너들에겐 어떤 임팩트를 가하고 있습니까.
『중간중간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큰 메시지를 주셔서 저희들 표현으로 「불 맞은 호랑이」처럼 막 뛰어야 합니다. 이런 적절한 자극 때문에 (三星의 디자인이) 이렇게 커진 것 같아요. 문제의식을 일깨워 주어 三星이 해외 디자인상을 많이 받게 되었고, 경쟁회사에 뒤처지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우월하게 되었어요.
지금 三星전자의 디자인은 애플의 디자인과 同等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無言의 응원이 되었습니다. 李회장은 디자인 발전을 이끄는 전도사 역할을 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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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전자 디자이너들의 미팅. |
디자인의 중요성에 관한 李회장의 강조는 다음과 같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과거의 기업들은 가격으로 경쟁했고, 오늘날은 품질로 경쟁한다. 그러나 미래엔 디자인에 의해 기업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곧이어 李회장은 그의 수필집(1997)에 다음과 같이 썼다.
<디자인의 중요성은 미래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상품경쟁력의 요소는 기획력·기술력·디자인력의 세 가지이다. 과거에는 세 가지가 더해지는 合의 개념이었으나 이제는 곱해지는 乘의 개념이 되었다>
―디자인에 관한 李회장의 식견은 어디서 유래한다고 보십니까.
『최고경영자로서 그분의 덕목은 인내심인 것 같아요. 회의 때 턱없는 발언이 나와도 묵묵히 들으신답니다. 그런 「귀」를 가진 회장께서 자주 세계의 석학과 전문가들과 만나 대화합니다. 그때 그들의 말을 경청할 것 아니겠습니까. 또 그분은 비디오나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엄청 보신대요. 한 편을 수십 번씩이나…. 대여섯 번을 보면 그후로는 스태프들의 움직임이나 조명이 어떠한지, 이런 것까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답니다. 「입체적 사고」가 한참 화두에 올랐던 무렵에 회장께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판매하는 입장에서, 사용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제품 하나를 갖고도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장께서 우리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李회장의 좌우명이 「傾聽(경청)」이라지만, 한번 입을 열였다 하면 매우 多辯 아닙니까.
『본인 스스로 「어눌하다」고 했지만, LA 회의 때 처음 대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말씀이 빠를 수 없어요. 그뒤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도 그렇더라구요. 본인께서 생각하신 것이 워낙 많고 깊으니까 회오리가 몰아치듯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입니다』
디자인을 지배하는 者가 세계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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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기들을 통합해 완벽한 네트워크 환경을 만드는 三星전자의 UB위버.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로 구성되어 있는 이 제품은 끊김없는 데이터의 흐름과 함께 保安 수준에 적합한 제어를 가능하게 한다. |
―디자인은 시대의 정신이나 이념을 담은 것으로 디자인의 역사는 인류사와 同行해 왔습니다. 미국의 청바지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 인류사에서는 디자인을 지배하는 者가 세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三星의 디자인은 新경영 이전만 해도 세계 수준에 크게 뒤떨어진 것이었는데, 그것이 불과 10여 년 만에 글로벌 일류와 겨루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三星은 人材 육성을 위한 투자에 관한 한 그 어떤 회사보다 강력합니다. 우리는 1993년부터 「三星 디자인 멤버십(SDM)」을 운영했습니다. SDM은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 중에서 디자이너 지망자를 매년 20명쯤 선발하여 産學협동의 제품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가시키는 제도입니다』
SDM의 학생들은 대학과 SDM의 활동을 양립시키기 위해 방과 후나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에 SDM의 과제를 작성한다. 물론 SDM에서의 성과는 대학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참여자들은 매우 바쁜 학창생활을 해야 한다.
『그 친구들은 거기(SDM)서 現業을 배웁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배우니까 직장에 들어와 옥죈 상태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진도가 빨라요.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도록 그룹을 만들어 주니까 훨씬 깊게 연구해요』
三星전자는 참여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사원(디자이너)들을 투입할 뿐만 아니라 참여학생이 24시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작업 스페이스, 데스크, PC 등을 지원하고 있다. SDM에 참여하는 학생수는 매년 50명 안팎인데, 그 경쟁률은 30대 1 정도이다.
SDM 학생에 있어서 産學협동 디자인 작업에 필적하는 중요한 커리큘럼이 「글로벌 디자인 프로젝트(GDP)」이다. 「글로벌 감각을 높이고 異문화를 체험한다」는 테마 아래 해외의 대학이나 디자인 스쿨 등과 공동으로 디자인 제안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일본의 교토(京都)공예섬유대학과 치바(千葉)대학, 미국의 아카데미 오브 아트 칼리지, 영국의 샐포드대학 등이 이 공동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10년 후 「디자인의 마피아」가 될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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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삼성 디자인 멤버십」출범 행사.「Break the wall」이란 주제로 벽을 깨는 세리모니를 벌이고 있다. |
『SDM 제도가 시행된 지 13년 됐고, 그 멤버들 중 350여 명이 졸업하여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엔 그중 170명 정도가 입사해 있죠. SDM의 1기생이 현재 마흔 살쯤 되어 과장급이 되었습니다.
거칠게 예상하면 앞으로 10년 후엔 그들이 「한국 디자인의 마피아」가 될 것입니다. 그 친구들에겐 학연·지연·혈연을 다 떠나 「멤버십」의 인연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거든요. 그들이야말로 三星전자 디자인의 근간입니다』
三星전자는 SDM과는 별도로 디자인 전문학교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도 1995년에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패션 디자인科, 그래픽을 배우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科, 프로덕트 디자인科 등 3개가 설치되어 있다. 재학생은 약 250명.
―三星의 디자이너에 대한 인센티브 및 再교육 제도는 어떤 것입니까.
『1997년에 「三星 디자인賞」(회장賞)을 제정,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이 상을 받으면 한 직급이 올라 2~3년 昇給(승급)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5000만원의 상금도 지급됩니다. 우수한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코아 크리에이션 멤버」라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는 해외 견학과 해외연수 프로그램 참여의 혜택을 줍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家具 匠人(장인)의 집에 우리 디자이너를 6개월쯤 연수시켜 徒弟(도제)처럼 배우게 합니다. 미국의 일류 디자인 회사에 보내 몇 개월 또는 1년쯤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판단능력이나 표현기술을 습득하게도 하죠』
―三星의 경우 10년 전만 하더라도 OEM(주문자 상표 부착) 비중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OEM先에서 요구하는 대로 디자인을 해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았어요. 新경영 이후 브랜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三星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했죠』
―10여 년 만에 어떻게 그런 진보가 가능했습니까.
『회사가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 가는 시점, 디자이너들이 제대로 성장한 시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키디바이스(핵심장치)가 백업된 시점, 李회장께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시점이 절묘하게 잘 맞아들었다고 생각해요. 李회장은 특히 경영층에 대해 「젊은이들과 자주 대화하고 TV 인기 드라마도 보면서 유행을 알고 디자인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三星전자에서는 디자인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디자이너 쪽이 먼저 엔지니어 쪽에 제품의 이노베이션(개혁)을 제안하기도 합니까.
『사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우리 디자인은 종속적으로 매달려 있는 하나의 기능 부문이었어요. 엔지니어가 만들어 주면 디자이너는 그 주위에 박스를 치는 식이었거든요. 그러나 최근에는 디자이너가 먼저 제안한 박스 안에 기능적 요소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TV나 PDP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또한 엔지니어 쪽에서도 이제는 「디자인이란 제품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뒤 거기에 첨가하는 미적 요소 정도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년에 애니콜 모델 200개 정도 디자인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간에 영역 다툼은 없습니까.
『디자인은 쉽게 말해서 「모태의 기능」인 것 같습니다. 디자인이 아무리 중요해도 디자인 쪽이 앞장서서 깃발을 휘두르며 이리 가자, 저리 가자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받아서 좋은 것을 수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3월 하노버 IT 박람회에서 三星전자는 그 어느 메이커보다 가장 다양한 모델을 출품했다면서요. 특히 애니콜이 호평을 받았고….
『이기태(통신사업부) 사장의 경우 굉장히 자주 디자인경영센터에 오시고, 또 디자이너들을 그리로 불러 함께 의논을 합니다. 디자인에 관한 아이디어도 많이 주십니다. 일본 휴대전화 메이커는 1년에 15~20개의 모델을 만드는데, 우리는 그 10배를 만듭니다. 느낌상, 애니콜은 전체 디자인 모델 중 3% 정도가 상품화, 出市됩니다』
―三星의 디자인력은 오히려 해외에서 먼저 평가를 받게 되었죠.
『국내에선 덜 평가받았죠. 사실 저희들은 국내를 좀 등한히 하고 해외의 디자인 시상제도에 눈을 돌렸습니다』
―三星은 LA, 샌프란시스코, 런던, 도쿄, 밀라노, 上海 등에 6개의 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 연구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각 지역의 연구소마다 분명한 역할이 있습니다. 최첨단 패션은 밀라노의 뒷골목에서 결정됩니다. 거기엔 匠人들의 숨결이 살아 있고 명품이 많이 나오거든요. 밀라노 연구소는 그런 가치들을 가지고 들어오려고 설립한 겁니다.
영국은 디자인의 중심자적 역할을 잘해요. 디자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많고, 초등교육에서 디자인을 의무화한 만큼 우수한 디자이너도 많습니다. 영국 연구소를 통해 디자인 전략을 배울 수 있죠.
미국 연구소를 통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트렌드, 디자인의 소프트 측면을 배우고 일본 연구소를 통해서는 제조기술의 경쟁력인 「사용성」과 「피니싱(끝마무리)」을 벤치마킹합니다. 저희들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 두 가지는 사용성과 끝마무리입니다』
―최근 일본 메이커도 三星전자의 디자인 경영을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보도됐지만 일본은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용어 대신에 「네오 재패니스크」라는 슬로건 아래 일본의 新문화 양식을 상품에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저희들에겐 새로운 시련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극복하기만 하면 한국의 디자인도 세계 톱 클래스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네오 재패니스크」의 실행 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
『전자·자동차·백화점·광고 회사·전통문화 등 12개 분야에 걸쳐 새로운 슬로건과 캐릭터를 만들어 그것을 모든 제품과 콘텐츠에 넣어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적인 모임을 앞으로 3년간 가동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더 높이겠다는 전략입니다』
세계적 디자인賞을 제일 많이 받은 기업
三星은 매년 7월 초에 발표되는 미국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협회의 디자인賞 「IDEA」를 중시해 왔다. IDEA 수상 제품의 관련 기사는 미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에 실린다. 「비즈니스 위크」는 2004년 7월5일 호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三星전자는 24년에 이르는 IDEA 史上 아시아 기업 최초로 미국과 유럽의 기업을 제압하고 최다 수상 제품(5개)을 기록했다. 2000년 이후 5년간의 누적 수상 개수에서 三星은 애플과 함께 수위를 다퉈 왔지만, 수상 점수로 애플을 웃돈 해는 없었다. 그러나 2004년도를 보면 애플의 수상 개수 4개에 비해 三星전자는 5개를 획득하고 있다>
三星은 매년 8월 초에 영국의 인터브랜드社가 발표하는 브랜드 가치조사 결과도 글로벌 초일류를 달성하기 위한 이정표로 삼고 있다. 2004년 三星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26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 21위를 기록했다.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인전략팀 과장 정승은(책임 디자이너)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매출액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디자인의 공헌도를 객관적인 자료로서 국제디자인 수상제도와 인터브랜드社의 브랜드 가치조사를 중시해 왔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시장의 평가와 브랜드 자산가치의 상승을 관련시켜 경영층에 대하여 디자인 부문의 존재가치를 어필하는 자료로 삼았던 것입니다』
―「자동차의 벤츠, 전자의 소니 등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디자인이란, 제품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뒤 거기에 첨가하는 미적 요소 정도로 느끼고 있다」 이것은 李健熙 회장의 1997년 발언입니다. 그동안 三星 특유의 이미지 형성을 위한 이념은 무엇입니까.
『당시 李회장은 「石窟庵(석굴암)」이란 話頭를 던졌습니다. 三星의 아이덴티티를 석굴암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석굴암 本尊佛(본존불)은 참배자의 입장을 배려한 예술품입니다. 키 170cm, 눈높이 160cm의 참배자가 우러러보면 본존불의 눈과 딱 마주치게 됩니다. 石造의 부식을 막기 위해 불상 주변 밑바닥에 찬물이 흐르도록 설계했습니다』
―석굴암은 예술성뿐만 아니라 과학성에서도 세계 초일류이죠.
『참배자가 유저(user) 아닙니까. 유저에게 제대로 서비스한다는 것이 석굴암 본존불과 내부공간의 배려인 것 같아요. 본존불의 光背는 실제로는 장방형이지만, 視覺的으로는 본존불의 頭上과 딱 겹치는 正圓이거든요. 제조자 중심이 아닌 유저의 시각을 중시한 것이지요』
感性품질의 조건―끝마무리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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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전자 디자이너의 작업실. |
三星전자의 디자인 혁신은 「비주얼의 혁신」, 「사용성의 혁신」, 「끝마무리(Finishing)의 혁신」의 3개 부문에서 추진되었다.
「비주얼의 혁신」은, 三星전자다운 디자인을 제품은 물론 포장이나 광고에까지 포함하여 토털 코디네이트하자는 시도이다.
「사용성의 혁신」은 제품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나 유저를 대상으로 한 조사나 테스트를 계속해야 가능해진다.
「끝마무리 혁신」은 제품의 가공이나 끝마무리 단계의 세밀한 조정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추궁해야만 이뤄진다.
三星전자 家電제품은,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는 일본 메이커의 제품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三星전자의 제품 디자인은 명확한 메시지를 갖추고 있지만, 일본과 미국 시장에서 선호하는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三星전자 모바일통신부 디자인팀의 관계자는 『일본 디자인을 벤치마킹해야 할 분야는 표면처리나 소재가공 기술』이라고 말한다.
「디자인 혁신의 해」로 선언되었던 1996년 이후 三星전자는 특히 「끝마무리 혁신」을 중시하고 있다. 「끝마무리 혁신」은 「감성품질」·「사용품질」·「절대품질」이라는 3개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감성품질」이란 인간의 기분이나 유행과 함께 변화하는 품질, 「사용품질」은 제품 사용 시 신체감각이나 시각에 호소하는 품질, 「절대품질」은 제품 그 자체의 기능적 품질을 말한다. 일본 메이커는 인간의 정서나 감각에 호소하는 디자인에 관한 한 따라잡기 어려운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인전략팀 정승은 과장에게 물었다.
―三星은 일본 메이커의 디자인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왔습니다. 디자인 부문에서 한국은 아직도 일본의 74%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던데요.
『디자인 부문에 있어서 일본 메이커를 「先進기업」이라고 하기보다 「참조기업」이라고 표현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디지털 시대가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날로그 시대엔 일본 메이커를 따라잡기 어려웠지만, 디지털 시대의 개막으로 三星과 일본 메이커는 同一線上에서 서게 되었습니다』
鄭과장은 필자에게 三星의 디자인 개혁에 관해 일본 전문가가 평가한 자료를 제시했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三星전자가 「Finishing의 혁신」에 열중하기 시작했다면 이러한 분야에서의 일본의 입장도 무사태평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시장에서는, 아직 존재감이 희박한 三星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Finishing 혁신」의 제품을 갖고, 세계시장은 물론 유일하게 남겨진 일본 시장도 석권하려고 할 것임에 틀림없다>
「三星다움」에 성공한 제품들
액정 TV나 액정 모니터를 주력으로 하는 三星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은 기술력과 디자인력을 무기로 샤프·소니·마쓰시타 등 일본 메이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2003년 IDEA에서 金賞을 수상한 액정 TV(LT17E3)의 특징은 스위치나 전원 코드류를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고, 디스플레이의 배면을 곡선 처리했다. 외관상 깔끔한 인상을 주고 가벼워서 이동도 수월하다.
2002년부터 시판된 액정 모니터(SyncMaster) 시리즈는 2중 힌지를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힌지에 의해 본체를 거의 평평하게 접어서 收納(수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운반 비용도 50% 절감된다.
三星전자가 자랑하는 TV 중의 하나가 키가 높은 臺座가 설치되어 있는 박막형 SVP-50L7이다. 디스플레이部를 떠받치는 기둥 부분에 주요 기구들을 收納했기 때문에 DLP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플라즈마 TV와 같은 박막형 스타일을 실현했다.
三星의 디자인을 세계일류로 격상시킨 것은 휴대폰이었다. 그 가운데 「李健熙 폰」(T-100)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앞에서 거론했다. T-100은 특히 그 넓적한 문자판에 의해 視力이 약해진 50代 이상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뒤에 출시된 E700도 「李健熙 폰」처럼 1000만 대가 팔린 히트 상품이다. 이것은 세계 최초로 안테나를 없앤 「intenna」 핸드폰으로 2004년 유럽에서 「벤츠폰」이라 일컬어졌다.
「레일 프린터」는 참신한 컨셉트 디자인으로 2003년 IDEA에서 銀賞을 받았다. 일반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사무실 한구석의 데스크 위에 설치된다. 사용자는 프린트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프린터가 있는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레일 프린터」가 설치되면 자기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뻗기만 하면 출력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서큘러 프린터」도 「레일 프린터」와 비슷한 컨셉트의 제품이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비즈니스맨은 비행기나 전철 안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서큘러 프린터를 지참하면 이동 중에 자료 인쇄까지 할 수 있다. 종이가 말려드는 원통형의 소형 구조이기 때문에 휴대하기에 간편하다.
三星미술관 「리움」을 南山 기슭에 세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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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리움」의 심장 역할을 하는 逆원추형 구조물「로툰다」. |
漢江이 내려다보이는 南山 자락(서울 용산구 한남동 748-18)에 국보 36점, 보물 104점 등을 소장한 三星미술관 「리움(Leeum)」이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10월13일에 문을 연 국내 최대·최고의 私立 미술관이다. 관장은 李健熙 회장의 부인 洪羅喜씨다.
리움은 한국 전통미술과 국내외의 근현대미술, 그리고 미래를 향한 실험적 예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1996년부터 8년간 1300억원을 들여 준공한 이 미술관은 2400평의 대지에 건평 8400평 규모다. 미술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위스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우리 전통 도자기에 영감을 얻어 설계한 「뮤지엄1」은 우리 전통미술품,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혁신적인 재료와 디자인으로 구현한 「뮤지엄2」는 현대미술품의 상설 전시공간이다. 기획전시 기능과 교육 기능을 담당하는 「三星아동교육센터」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에 의해 「미래의 예술과 문화를 담아낼 공간」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실험적으로 연출되었다.
세계적 건축가 3명에 의해 서로 다른 개성으로 표현된 건물 자체도 볼거리이지만, 「뮤지엄1」에 전시된 한국 古미술품 컬렉션은 질과 양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이곳에는 한국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청자·분청사기·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재능과 심미안을 잘 보여 주는 금속공예품,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書畵家들의 대표작들, 불화·불상 등 각종 불교미술품 등이 4개 층에 나누어 전시되어 한국의 예술감각을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三星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고 깊은 기업이다. 三星그룹의 창업자 故이병철 회장이 일생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 1982년 경기도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개관한 데 이어, 1982년 호암갤러리, 1998년 로댕갤러리를 열었다. 리움의 개관에 따라 이 소장품들 중에서도 정상급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특수제작한 PDA 헤드폰의 위력
리움은 인터넷과 전화예약 손님만 관람할 수 있다. 주말 이외의 경우는 하루 전에 예약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미술관에 입장하면 안내데스크에서 디지털 전시 가이드 「똑또기」(PDA: 개인휴대단말기) 하나씩을 대여한다.
「똑또기」를 머리에 둘러쓰고 작품 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작품마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영어·일어·중국어 등 관람객이 원하는 언어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각각의 작품 설명은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관람이 끝난 뒤 검색해서 다시 들을 수 있다. 관람객은 三星전자가 리움을 위해 특수 제작한 器機의 위력에 감동을 받게 된다.
국보 133호 靑磁辰砂 蓮花文 瓢形(청자진사 연화문 표형) 주전자, 국보 219호 靑華白磁 梅竹文(청화백자 매죽문) 항아리, 국보 216호 정선의 「仁王제색도」, 국보 139호 김홍도의 「群仙圖(군선도)」, 국보 213호 金銅大塔(금동대탑), 국보 218호 阿彌陀三尊圖(아미타삼존도)… 이런 絶頂의 예술품이 바로 이곳에 모여 있다.
전시관 중앙에 위치한 로툰다(逆원추형 구조물)를 통해 自然光이 지하 1층까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로툰다 주위는 시원스럽게 트인 홀이다. 필자를 안내한 三星문화재단의 김희종 홍보팀장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그냥 놔두긴 아깝지 않아요.
『이 공간에서 해외 바이어들을 초청하여 三星의 신제품 발표회 같은 행사를 열기도 하죠』
리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었다. 이곳은 한국의 5000년 문화와 21세기의 비즈니스가 이어지는 接點(접점)인 것이다. 三星 디자인은 5000년 역사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듯하다.
「뮤지엄2」에는 191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李仲燮, 朴壽根, 張旭鎭, 李象範 등의 서양화가 전시되어 있어 한국 근현대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조감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白南準의 「나의 파우스트-자서전」 등 국내외 유명작가의 大作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해외의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고, 국내 유망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
三星디자인의 宗家―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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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의 신사복「갤럭시」와 디자이너. |
「三星의 디자인」 운운하면서 三星그룹의 母胎(모태)기업인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매출 40조원에 순익 10조원(2004년 기준)을 기록한 글로벌 1류 三星전자와 매출 2조4789억원에 순익 926억원의 제일모직은 규모 면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그러나 제일모직 패션부문에서 차지하는 디자인의 비중, 즉 디자인이 그 조직 자신의 死活에 미치는 영향력이란 차원에서는 三星전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駐韓 일본대사관을 마주 보는 17층 빌딩에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입주해 있다. 이 빌딩 마당에 있는 아담한 亭子로 제일모직 경영지원실 기획팀 과장 박남영씨를 불러냈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입주한 건물답게 매우 세련된 빌딩이군요. 아이구, 이 골목 안이 이렇게 호화스럽게 변하다니. 이거 언제 지은 건물입니까.
『2003년에 준공된 건물인데,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11개 층을 사용하고 있죠. 건물주는 三星생명이고, 우리는 셋방살이 하고 있어요』
이 건물에서 일하는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직원은 모두 800명, 그중에서 디자이너가 140명이다. 디자이너의 主力은 여성이다. 남성 디자이너는 10명 미만이다. 디자이너들은 개성적인 멋쟁이들이다. 朴과장의 차림에서도 디자이너 출신다운 格을 느꼈다.
―수송동 골목 안에 꽃이 활짝 피었네요.
『제일모직 패션부문이 들어오니 동네 색깔이 변했다고 해요. 주변에 브랜드店도 들어오고, 거리도 훨씬 젊어지고…』
朴과장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三星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무슨 「요새」에 들어가는 것처럼 까다로웠지만, 이곳은 자유스러움, 바로 그것이었다. 1층의 널찍한 홀 건너편에 「패션연구소」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1993년에 설립된 三星패션연구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한 패션정보를 바탕으로 패션연구와 人材양성을 위한 센터입니다. 이곳에선 해외 트렌드 전문가 초청 세미나가 정기적으로 개최됩니다』
―국내시장에서 제일모직 신사복은 외국 유명 브랜드에 밀리지 않습니까. 세일도 잘 안 하고, 할인율도 겨우 30% 정도던데요.
『제일모직의 신사복 「갤럭시(Galaxy)」는 국내 최고급 브랜드예요. 국내 유일의 非접착 공법으로 제작되죠. 갤럭시를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격상시키기 위한 제일모직의 노력도 다각도로 추진되어 오고 있어요.
그 일환으로 지난 2월에 세계 최고의 명품 신사복 브랜드 「브리오니(Brioni)」의 기획 및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해 온 이탈리아人 가브리엘레 나폴레타노를 갤럭시의 상품기획 총괄 디렉터로 영입했죠. 그의 단골고객은 존 웨인, 게리 쿠퍼, 클라크 케이블, 피어스 브로스넌(영화 007의 주연배우), 코피아난(UN 사무총장), 무바라크(이집트 前 대통령) 등이었습니다』
―非접착 공법이 뭡니까.
『非접착 공법은 몸판에 심지를 붙이지 않고 열과 습도에 민감한 원단을 정확하게 가공하기 위해서 일반 접착제품보다 100개의 추가 공정과 숙련공이 필요합니다. 이로써 제일모직은 국내 신사복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패션에 대한 투자와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2004년 4월에 설립된 제일모직 봉제기술연구소는 신사복의 패턴과 봉제기술, 新소재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곳입니다. 봉제기술연구소는 신사복을 만드는 공장을 방문해 新기술의 전파와 교육을 실시하여 匠人정신의 과학화에도 힘쓰고 있죠』
「쇼룸」이라는 팻말을 단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전체를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갤럭시」, 「로가디스」, 「빈폴」 등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세계적인 패션기업의 제품이 비교 전시되고 있습니다. 원단과 패턴, 봉제기술 등에 대한 비교를 외부 공인 기관인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 의뢰,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죠. 비교전시되는 유명 브랜드 제품은 이탈리아의 「브리오니」, 「제냐」, 「버버리」, 「지방시」, 「구찌」 등입니다』
三星의 브랜드 확장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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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1」의 내부. |
2003년 7월에 설립된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된 三星그룹의 현지법인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육성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밀라노 법인은 현지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개설, 선진 디자인 정보를 수집하면서 소재 및 완제품 등의 이탈리아 생산업체 소싱(sourcing)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제일모직은 세계적 모직물 생산거점인 이탈리아의 비엘라에도 모직물 기술 개발 및 시장 조사를 위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3년에 문을 연 비엘라연구소는 3년 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직물 품질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제일모직이 2002년에 개발한 모직물 「란스미어 220」은 이미 세계적 명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제일모직의 「빈폴」은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브랜드만이 가능한 브랜드 익스텐션(확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빈폴」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에 따른 활동적이고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여성 커리어를 겨냥하여 2001년 봄 「빈폴 레이디스」를 론칭했다. 이후 빈폴은 「빈폴 옴므」, 「빈폴 골프」, 「빈폴 진」을 론칭했고, 「빈폴 키즈」, 「빈폴 액세서리」의 出市를 통해 7개의 서브 브랜드를 갖추게 되었다.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일류」를 활용한 브랜드 확장 정책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제일모직은 지난 5월26일 하얏트 호텔에서 금년 가을·겨울을 겨냥한 여성브랜드 패션쇼를 열면서 「北風, 블루블랙폰과 함께」라는 컨셉트를 내세웠다. 여성 복과 애니콜의 첨단 휴대폰인 「블루블랙폰」이 하나의 무대를 이룬 것이었다.
블루블랙폰은 프랑스 패션전문지 「스터프」 금년 1월호에서 「아름답고 세련된 검은 드레스를 걸친 완벽한 몸매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휴대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좀 해묵은 자료이긴 하지만,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1998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미국, 싱가포르, 홍콩, 네덜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덴마크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가경쟁력 상위에 랭크된 나라들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국토와 인구가 적지만, 디자인을 국가경쟁력의 핵심역량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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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겨울을 겨냥한 제일모직의 여성 브랜드「구호」와 애니콜(제품이름: 블루블랙폰) 공동 주최 패션쇼. 지난 5월26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이 패션쇼는「Trip to North, 블루블랙폰과 함께」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
强小國의 공통점은 디자인力을 핵심역량으로 삼는 것
디자인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기술 개발에 비해 디자인의 투자비는 20분의 1에 불과하나 투자효과는 크고 빠른 지식집약형 高부가가치 산업이다. 그렇다면 한국 디자인의 위상은 어떠한가.
산업자원부의 「디자인산업 발전전략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디자인의 위상은 경제적 위상(GDP 세계 12위)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디자인 선진국의 80%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 디자인의 강점은 풍부한 디자인 인력과 우수한 IT 인프라로 꼽혔다. 디자인 관련 학과의 졸업생은 연간 3만6000명으로 세계 최다 수준이다. 지난 5년간 평균 27%의 증가세를 보였다. 三星전자가 주도하는 디지털 전자·통신기기 등 일부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디자인 파워 국가로 성장했다.
李健熙 회장은 지난 4월 밀라노의 三星법인을 둘러보고 『애니콜만 빼고 三星의 모든 제품은 아직도 1.5류 수준에 불과하다』며 수행한 사장단의 분발을 촉구했다. 三星은 2007년까지 톱 티어(Top Tier: 세계 10위 이내) 브랜드의 달성을 中期목표로 삼고 있다.●